13세기 초에 쑤코타이 왕조가 인도차이나반도 중앙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비슷한 시기에 북부에서는 란나 왕조가 들어서서 또 다른 패권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란나 왕조는 흥망성쇠와 영욕(榮辱)의 세월을 견디어 내며 랏따나꼬신 왕조 초기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영민하고 덕망 높은 군주가 다스리던 시기에는 불교가 융성하고 사원과 불탑이 세워졌다. 그 시대의 삶은 풍족하고 편안했다. 그래서 사원과 불탑에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부덕한 군주가 들어서면 백성들은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전쟁이 일어나고 사원과 불탑이 불에 탔다. 그러면 다시 복원하고 새로 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섬세함과 정교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700여 년을 살아온 란나의 후손들에게는 그들만의 미소가 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그리고 부유하지 않으면서도 궁핍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미소였다. 그들은 처음 왕조를 세우면서 “란나”라고 이름지었다. ‘백만의 논’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넉넉한 땅에서 풍요롭게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또 조상 대대로 “뚱”이라고 부르는 깃발을 만들었다. 그 깃발에 때로는 불심(佛心)을 담고 때로는 자신들의 소망을 담아 안녕과 복을 구했다. 이런 “뚱” 속에 담긴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 같다. 오늘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정환승
1987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졸업
1993 태국 Prince of Songkla University 대학원 졸업(태국어학 석사)
2000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졸업(언어학 박사)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통번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