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인가, 창조인가 ― 오역 논쟁을 넘어서서 바라보는 문학의 새 관점
번역본을 읽는 독자는 그것이 ‘좋은 번역’이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번역본을 읽고 감동했는데 사실 그것이 원문과는 꽤나 달랐다면, 그것은 ‘오역’일까, ‘예술’일까?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은 건 이론의 여지 없이 탁월한 그 문학성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영어 번역본 The Vegetarian의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번역을 둘러싼 한국 문단의 반응은 찬사와 비판이 팽팽히 맞섰다. 『채식주의자의 창조적 배신』은 바로 그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서, 번역이라는 창조적 행위의 본질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이 책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등을 영어로 옮기며 보여준 창조적 해석과 개입의 의미를 다양한 이론적 틀로 분석한다. 1장은 스미스가 어떻게 『채식주의자』 한국 원문에 내재된 페미니즘의 요소를 강화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번역했는지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오역 논쟁'의 실제 흐름을 되짚으며, 언어적 충실성을 넘어선 해석과 권력, 젠더의 문제를 조망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스미스의 번역을 단순한 중개행위가 아닌, 독자에게 문학적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하고, 그의 번역 방식이 어떻게 문화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영미권 독자에게 한국의 역사와 감정을 전달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영어 번역과 비교함으로써, 문화적 맥락과 전략에 따른 번역 방식의 다양성 또한 드러난다.
『채식주의자의 창조적 배신』은 한강 문학의 세계화,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번역이라는 매개를 다층적으로 성찰하는 문학비평서이다. ‘문학의 세계화는 번역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이 책은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페미니즘과 번역, 문화 권력과 창작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따라가다 보면, 번역이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 권력, 예술의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에 열려 있는 독자 누구에게나 이 책은 도발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윤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영국 퀸메리 런던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워릭 대학교에서 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번역과 젠더, 탈식민주의 번역, 번역과 창작, 한국문학 번역 등이 있다. 국제저명 학술지에 여러 논문을 게재했고, 현재 〈페미니즘 번역 연구〉 국제 저널의 특집호 공동 편집장을 맡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고, 경향신문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였다. 역서로는 수잔 바스넷의 저서를 옮긴 『번역의 성찰』과 『번역』이 있다